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문단 편집) ==== 비판 ==== 다만, 일각에서는 한니발의 전략적 안목은 그다지 우수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선, 알프스를 넘어 로마의 중심부를 친다는 대전략이 그렇게 특출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주변부를 피해 중심부를 직접 타격한다는 발상은 그리 특출날 것 없이 상당히 흔했다. [[고대 그리스]]부터 살펴봐도 [[고대 아테네|아테네]]를 안 치고 [[트라키아]]를 먼저 친 브라시다스, [[시칠리아]]의 카르타고군을 격멸하는 대신 [[아프리카]] 본토 상륙을 감행한 [[참주]] 아가스토클레스 등이 있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공격한 것도 한니발이 최초가 아니다. [[폴리비오스]]의 언급에 따르면 한니발 이전에도 [[켈트족]]들이 여러 번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공격했다. 게다가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공격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시각도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보급의 어려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니발의 계획은 자신이 이탈리아를 유린하는 사이 카르타고가 로마 외곽을 점령하면서 자신에게 해상 보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르타고에는 로마의 해군을 뚫고 한니발에게 보급을 할 역량이 없었다. 즉, 한니발은 자국과 적국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 한 것이다. 카르타고의 보급이 어려워지자 한니발의 이탈리아 공격은 뒤가 없고 실패가 예정된 작전이 되었다. 이는 아무리 한니발이 잘 싸우고 이탈리아에서 오래 버텨도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니발의 '''본토 기습 전략'''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한 비판도 많다. 애초에 한니발의 '''기습'''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알프스 산맥은 험준하기는 하지만 한니발이 최초로 넘은 것은 아니다. 이미 켈트족이 수차례 알프스를 넘어 로마의 영토를 습격하고 [[약탈]]한 바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는 한니발이 알프스를 통과할 수 있음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의 진격을 알아챘다. 결과적으로 한니발은 어떻게든 로마 본토에 진입해내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추구한 기습 효과 덕분은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